유향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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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향은 전한 선제를 섬기며 문장가로서 발탁되었으나, 연단술 실패로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소망지 등과 함께 외척과 환관의 폐해를 상소했으나 무고로 여겨져 투옥되고 면직되었다. 원제, 성제 시기에 걸쳐 여러 차례 관직을 얻었으며, 황실 도서관 정리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신서》, 《설원》, 《열녀전》 등을 편집했고, 《산해경》의 최초 편집자로 알려져 있다. 유향은 72세에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유흠이 그의 업적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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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 (전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유갱생 (劉更生) |
자 | 자정 (子政) |
출생 | 기원전 77년 |
출생지 | 쉬저우, 한나라 |
사망 | 기원전 6년 (71세) |
아버지 | 유덕 (劉德), 양성묘후 |
자녀 | 유흠 |
직업 | 천문학자, 역사가, 사서, 시인, 정치가, 작가 |
종교 | 유교 |
이름 | |
성 | 유 (劉) |
이름 | 향 (向) |
로마자 표기 | Liú Xiàng (병음) Liu Hsiang (웨이드-자일스) |
기타 이름 | |
본명 | 유갱생 (劉更生) |
로마자 표기 | Liú Gēngshēng (병음) |
자 | 자정 (子政) |
로마자 표기 | Zǐzhèng (병음) |
2. 생애
유향은 쉬저우에서 태어났으며, 전한의 창시자인 유방의 먼 친척이었다. 한 원제 초기에 소망지 등을 포함한 일련의 유학 관료들과 함께 황제의 여성 친족인 외척 쉬씨와 스씨 가문의 권력을 제한하고자 했다. 그러나 강력한 환관인 홍공과 스셴 사이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여 잠시 투옥되었다가 공직에서 해임되었고, 이후 15년 동안 새로운 직책을 받지 못했다.[3]
한 성제가 즉위하면서 정부 관련 파벌 간의 권력 재편이 이루어졌고, 유향은 관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기원전 26년, 황제의 명에 따라 남은 생애 20여 년 동안 황실 도서관을 정리하는 방대한 서지학 작업에 몰두했다.[4] 이 작업은 아들 유흠의 도움을 받았으며, 유흠은 아버지 사후에 이 과업을 완수했다.
이 무렵, 외척 왕씨가 권력을 잡고 있었으므로, 『열녀전』 등을 저술하여, 여러 번 주상에게 간언했다. 주상도 간언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의 압력 때문에 그들을 활용할 수 없었고, 유향은 30여 년 동안 중용되지 못한 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홍후 유흠은 그의 셋째 아들이다. 춘추 전국 시대는 공자의 『춘추』와 유향의 『전국책』에서 유래했다.
2. 1. 초기 생애와 정치 활동
관례를 치른 후, 선제를 섬기며 문장 재능을 인정받아 발탁되었다. 아버지 유덕이 회남에서 얻은 서적을 통해 스스로 연단술에 도전했으나 실패하여 탄핵을 받고 투옥되었지만, 형 양성후 유안민의 주선과 그의 재능을 아낀 덕분에 다시 조정에 등용되었다.[2] 이후 소망지, 주감 등과 힘을 합쳐 직무에 힘썼으며, 외척 허씨와 환관 홍공 등의 폐해를 상소하여 간언하였다. 그러나 무고를 당하여 소망지는 자결하고, 주감 등은 좌천되었으며, 유향은 투옥된 후 면직되었다. 얼마 후, 맏형 유안민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양성후를 계승했다.[3]10여 년 후, 성제 시대가 되자 홍공 등은 실각했고, 이에 유향은 다시 등용되었다. 이때 이름을 향으로 고쳤다. 그 후 궁중 장서의 교정을 담당하게 되었다.[4]
2. 2. 성제 시대의 활동과 좌절
관례를 치른 후, 선제를 섬기며 문장 재능을 인정받아 발탁되었다. 아버지 유덕이 회남에서 얻은 서적을 통해 스스로 연단술에 도전했으나 실패하여 탄핵을 받고 투옥되었지만, 형 양성후 유안민의 주선과 그의 재능을 아낀 덕분에 다시 조정에 등용되었다.[2] 이후 소망지, 주감 등과 힘을 합쳐 직무에 힘썼으며, 외척 허씨와 환관 홍공 등의 폐해를 간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무고를 당하여 소망지는 자결하고, 주감 등은 좌천되었으며, 유향은 투옥된 후 면직되었다.[3] 얼마 후, 맏형 유안민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양성후를 계승했다.10여 년 후, 성제 시대가 되자 홍공 등은 실각했고, 이에 다시 등용되었다.[4] 이때 이름을 향으로 고쳤다. 그 후 궁중 장서의 교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무렵, 외척 왕씨가 권력을 잡고 있었으므로, 『열녀전』 등 저작을 시작으로, 문장을 올려 여러 번 주상에게 간언했다. 주상도 간언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의 압력 때문에 그들을 활용할 수 없었고, 유향은 30여 년 동안 중용되지 못한 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홍후 유흠은 셋째 아들이다.
2. 3. 학문적 업적과 영향
유향은 황실 도서관의 첫 번째 목록인 《별록》(*Bielu*)을 편찬했으며, 그의 아들에 의해 완성된 《산해경》(*Shanhaijing*)의 최초 편집자로 알려져 있다.[5] 또한 《전국책》(*Zhanguoce*), 《신서》(*Xinxu*), 《설원》(*Shuoyuan*), 《열녀전》을 포함한 이야기와 전기 모음집을 편집했다. 그는 오랫동안 도교 성인전과 찬송가 모음집인 《열선전》(*Liexian Zhuan*)을 편찬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6]유향은 시인이기도 했으며, 《초사》에 실린 "구탄"(九嘆, *"Jiu Tan"*)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7]
3. 저작
유향은 다음 저작들을 남겼다.
4. 가계
유향은 쉬저우에서 태어났다. 전한의 창시자인 유방의 먼 친척이었던 그는 통치 왕조 씨족(유씨)의 일원이었다. 유향의 아버지는 후작이었다.[2] 유향의 아들인 유흠은 아버지와 친척인 유안 (회남왕)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받았다.
참조
[1]
서적
Loewe
[2]
서적
Hawkes
[3]
서적
Hawkes
[4]
간행물
"Empire" in the Classical Era in China (304 BC–AD 316)
Harrassowitz Verlag
[5]
서적
Rewriting Early Chinese Texts
[6]
웹사이트
China Knowledge
http://www.chinaknow[...]
2010-07-24
[7]
서적
Haw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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